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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에세이

우리들의 정원, 아원(我園)

 

공간은 헌신이다. 어느 공간이 따뜻하면 그를 지키는 이의 온기를 생각한다. 어떤 공간이 아름다우면 그 곳을 만든 이의 미감을 생각한다. 어딘가 허술해 보이는 공간이어도 그 곳을 지키는 데는 몸과 마음이 쓰인다. 그래서 아름다운 공간에 머물 때 나는 더 다정해진다. 누군가의 지극한 마음 안에 있는 걸 안다. 그 안에 깃든 정성과 살핌을 안다. 그러니 시선이 닿는 모든 것들에 기쁘고 감사하지 아니한가. 특히 이 곳 아원고택에서는 더더욱.

 

완주는 처음이었다. 전주에서 가까운 지방 도시쯤으로 여겼다. 유월은 신록을 지나 짙은 녹음으로 깊어가는데, 계절의 빠른 속도에 삶은 깊어지긴커녕 더 조급해졌다.

 

ㅡ벌써 유월이야. 왜 이리 빨라.

 

시간에 등 떠밀려 살고 있었다.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들에 집중하고 있었고. 몰입은 좋은 것이지만 함몰되는 건 경계해야 한다. 근시안이 되기 쉽고 시야가 좁아지기 쉽지. 이럴 때 필요한 건 뭐? 멈춤과 거리다. 여행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함께 떠난 이들이 가능하게 해. 그래서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떠나왔다. 이 절대 미감의 아원고택으로. 그리고 이 곳의 특별한 전시를 보기 위해.

 

 

 

 

TIME DROP. 잠시 시공간을 초월해보는 경험, 무아의 경지를 체험해보는 전시다. 아원은 물과 빛, 건축의 조화만으로도 이미 압도적인 공간이다. 여기에 오마 스페이스 장지우 작가의 구도와도 같은 예술과 만나니 빨랐던 삶이 단박에 느려지며 들숨 날숨이 여여해져. 아원과 오마는 서로를 받쳐주며 또 각자의 존재감을 부족함없이 드러냈다. 거대한 종모양 구조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 구조물 아래 해드셋을 쓰고 정좌를 하고 앉는다. 자세를 바로 앉자 마음에 군더더기가 없어진다. 눈을 감자 마음이 간단해진다. 거대한 종이 서서히 내려와 시공간을 온전히 고립시킨다. 5분간의 명상. 어느새 단절이라는 긴장과 공포는 사라지고 아득한 태고의 소리에 집중하며 평안을 얻는다. 심연의 어둠 속에서 명백한 살아있음을 느낀다.

 

지도무난 유혐간택(至道無難 唯嫌揀擇).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 다만 분별하는 마음을 갖지 말라. 짧은 시간이지만 또렷한 통찰을 만난다. 사는 일 복잡할 게 무엇일까, 들숨 날숨이 고스란히 감각되는 지금이 진실이지.

 

아원고택은 삶의 지금을 감각하기에 최고, 최적의 공간이다. 과거로부터 현재, 미래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모든 시간이 응축되어 있고, 전통과 현대 건축이 이토록 잘 어우러질 순 없다. 절묘하다라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것. 고택의 문설주, 댓돌 하나도 과함이 하나도 없다. 모든 것들이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있을 뿐.

 

아원고택은 20년간 한결같은 뜻을 품은 전해갑 대표님의 헌신으로 아직도 만들어지고 있다. 대표님에게 아원고택 이야기를 듣다보니 건축은 삶이고 철학이고 메시지에 다름 아니다. 특히 상처입고 버려진 곳을 살펴야 한다고 설파하실 땐, 우리 모두 믿습니다!를 외쳤다. 엄청난 달변이셨는데, 긴 긴 시간과 마음을 쓴 사람만이 그리 이야기할 수 있다. 이 곳의 돌 하나, 풀 한포기 허투루 하지 않는 사람만이 그리 성찰하고 그 성찰 웅변할 수 있다.

 

감동적인 건 이 공간을 지키는 분의 태도였다. 이 곳에서 15년간 일했다는 전하루 디렉터는 아원의 뜻을 묻는 내게 빛나는 눈, 열정적인 몸짓으로 대답해주었다.

 

ㅡ아원은 나 我자를 쓰는데 의미는 우리예요. 우리들의 정원이라는 뜻입니다. 나보다 늘 상대를 생각하라는 의미예요. 저 앞 종남산이 있어 아원고택이 아름다운 것처럼, 우리 모두 혼자서는 아무것도 아니니까요.

 

공간은 헌신이자 철학이다. 누군가를 맞이하고 보내주고 기다리는 곳은 충만한 품을 지녀야 한다. 그 안에서 우리는 안온하고 충전하고 안녕하는 것이지. 아원고택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처음 만나는 사이인데도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했다. 분별하지 않는 마음엔 금세 우정이 깃들었다. 스스럼 없이 과거도 고백했고 현실도 토로했고 미래도 응원했다.

 

모든 게 품어주는 공간의 힘이고, 그 공간에 찾아든 우리들의 힘이지. 아원고택을 알아도 아무나 갈 수는 없다. 절실하고 절박해야 길을 찾는다는 대표님의 카랑카랑한 웃음이 들린다. 짧은 여행에 생의 고수들을 잔뜩 만났다. 어떤 만남은 그 자체로 응축되어 성장판이 된다. 마음의 키가 한뼘이나 자라서 돌아와 다시 떠날 날을 꼽아 보는 우리들의 정원, 아원이다.

 

글 / 임지영 (즐거운예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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