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없는 도시라 했다. 특별한 게 없다고. 독서 아카데미 프로그램으로 선정되어 청주 문화의 집에 강의를 다니게 된 내가 들은 얘기다. 먼 지역 강좌를 갈 땐 피로보다 설렘이 앞선다. 굳이 시간내서 먼 길 떠나는 게 여행인데 일도 하고 세상 구경도 하고, 아직도 집 나오는 일은 마냥 즐겁다. 청주에서 첫 수업을 하고 한껏 고양됐다. 예술 인문학 수업에 참여하는 분들의 태도와 호응이 너무 좋아서 깜짝 놀랐다.
특히 점잖게 뒤로 빼실 줄 알았던 남성 분들의 적극적 표현에 모두 즐거워했다. 참여하신 분들 대부분 예술을 낯선 것이 아닌 우리 일상 속 가까운 것으로 인식하고 계셨고, 그림 한 점에서 길어올리는 이야기들이 몹시 다정했고 다양했다. 그걸 표현 할 계기가 없었을 뿐이다. 자극이 없었을 뿐이고. 그림이라는 질 좋은 생의 자극 앞에 까마득히 잊었던 내가 불려나오고 어머니가 걸어나왔다. 올해 76세라는 어르신이 그림을 보니 우리 엄마가 보여요 할 땐 울컥해서 혼났다.
청주까지 와서 그냥 갈 순 없지. 문화의 집 관장님과 국장님의 소개로 청주시립미술관에 다녀왔다. 처음에는 솔직히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지역의 미술관들이 자기들만의 정체성을 고민하고는 있으나 여의치 않은 환경과 지역 예술가 부재를 알기에 그저 한 번 들러보는 마음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전시를 보고 안내를 받으며 내 안일한 마음은 놀라움으로 바뀌었고, 감흥은 여과없이 분출됐다.
마침 오늘이 기획전의 오프닝날인데 아직 행사 전이라 분주한 가운데서도 동중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전시 제목부터 남다르다. <누구에겐 그럴 수 있는>展. 내일의 미술가들이라는 젊은 예술가 9인의 기획전인데, 기획이며 큐레이션이 대단히 감각적이다. 9명 작가의 전시룸을 하나씩 돌며, 작품의 이야기를 들으며, 너무 좋네요! 소리를 열번쯤 하다가 불현듯 아쉬워졌다.
크지도 않은 나라인데 어쩌면 이리 예술 교류가 요원한 일인가 하고. 모든 자원의 서울 쏠림 현상이 안타까워지며 문화 예술만큼은 지역을 떠나 모두의 공공재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진다. 서울에서 열리는 좋은 전시를 청주에서도 볼 수 있고, 청주에서 열리는 이 좋은 전시를 서울에서도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작품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흥미로운데다 마음에 또렷한 자국을 남겼다. 인도네시아, 중국 작가들의 문제 의식은 우리의 그것과도 닿아 있어 강렬했다. 그리고 청주 창작 스튜디오 작가들의 작품은 그야말로 감탄이 터졌다. 기대하지 않았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젊은 예술가들이 지니는 문제 의식과 그것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힘.
젊음의 강단이고 용기라는 생각이 든다. 전시는 기성 세대라 불리우는 나를 비롯한 우리를 돌아보게 하고 때로 움찔하게도 한다. 뱅크시가 말한 예술은 불안한 자들을 편안하게 하고 편안한 자들을 불안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작품으로 구현 된 느낌. 어쩌면 우리는 불편한 진실을 애써 피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내일의 미술가들이 마주보자고, 이제 깨어나자고 독려한다.
예술은 공감의 매개다. 한 작품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글을 써보면 모두 다른 이야기를 하지만 서로 공감할 수 있고 있는 그대로 수용된다. 세대의 차이가 확연하고 남녀의 차이도 명료하지만 우리는 이토록 달라서 따뜻하게 안아줘야 하는 존재구나 마음 뒤뜰이 넓고 푸르러지지. 전시를 볼 때면 그림 안의 이야기를 듣곤 한다.
나에게 무슨 말을 걸어 오는지, 다른 사람들에겐 어떤 이야기로 다가갈지. 청주 시립 미술관의 작품들은 그 앞에 오래 오래 머무르며 귀기울여야 할 작품들이었다. 9인 9색, 개성이 다 달랐고, 재미와 의미의 균형감도 정말 좋아서, 몇번이고 감탄사를 남발했지 뭔가.
누가 노잼도시라 했나. 청주 강의 첫 날 참석하신 분들의 열정에 놀랐고, 두번째 날 시립 미술관에 와서 청주라는 도시의 팬이 됐다. 알고 보니 인구 대비 미술관 수가 가장 많은 지역이 청주. 예술을 즐기고 누리기 너무 탁월한 환경인 것이다. 물론 시설이 근사하고 인프라가 훌륭하다고 예술 향유자가 저절로 늘어나진 않는다.
서울의 멋진 갤러리들도 오프닝날 이후엔 텅 빈 채 적요롭기 쉬우므로. 청주시립미술관 전시엔 활기가 넘쳤다. 내일의 미술가들이 전하는 '누구에겐 그럴 수 있는' 진실과 삶에 대한 이야기. 그림을 들여다보는데 사회가 보이고 우리가 보이고 저만치 내가 보인다. 원대한 포부는 없지만 터벅터벅 하루를 성실히 걷는. 먼 길 출장도 여행이라 여겼더니 이리 뜻밖의 생이 주는 선물도 받고 말이지. 예술은 자체로 선물이니까.
청주시립미술관은 이제 청주에 반드시 가야 할 이유가 됐다. 누구에게나 그렇길 바란다.
글 / 임지영 (즐거운예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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