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시회 칼럼

<오늘도, 행복> 김선옥 개인전

긍정의 언어가 좋다. 워낙 유복하고 걱정없이 살았잖아, 그러니 세상 맑고 밝게만 보는거지 라는 말을 들으면 웃는다. 예전에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얼마나 힘들었는데! 하며 좌절과 절망의 경험을 줄줄이 읊었는데 이젠 가만히 미소 짓는다. 알게 됐다. 그리 보이는 것도 능력이구나. 어려운 시절이 내게 그늘을 드리우지 않았구나. 그저 명랑한 미소로 남아 지나간 것은 더는 나를 괴롭힐 수 없을 뿐 아니라 어쩌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겠구나. 

 

그래서 도탄에 빠진 이에게 힘내라는 말보다 그 시간이 힘이 될거라고, 분명히 그러하다고 얘기하곤 한다. 물론 저마다의 고통의 깊이야 가늠할 수 없으므로 섣부른 위로나 당신을 이해한단 말 따위는 하지 않지만,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삶이라는 직조 위에 자연스럽게 기쁨 한 코, 슬픔 한 코 엮어가는 것이 아닌가 해서, 예외없이. 그렇다면 생의 일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겠다, 될수록 긍정해야겠다, 운명 앞에 순순해졌달까. 

친구들이 그래서 우스개 소릴 한다. 네가 예쁘다는 말 안 믿어. 옷 사러 가도 다 예쁘대. 머리가 이상해도 다 예쁘대. 하지만 거짓이 아닌 걸. 그 옷은 그 옷대로 이쁘고 저 옷은 또 저 옷이라서 이쁘고. 커트를 망쳤어도 나름 다른 멋이 보이는 걸 어쩌라고. 나는 가장 예쁜 데가 먼저 보이는 걸. 사람도 그렇고 예술도 그렇다. 한껏 느끼라고 맘껏 누리라고 잔뜩 고조시켜 놓은 인간의 정신적 산물, 예술 앞에 그것이 감각되는 건 당연한 것이니까. 

 

아마도 유년 시절부터 그림에 둘러싸여 자란 환경이 그것을 누리는데 최적화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술을 보는 방식은 사람에게도 적용됐다. 의미없는 그림 없는 것처럼 역사없는 사람은 없어. 들여다보면 느껴지고 알게 되면 안게 된다. 가까이 응시해보면 생의 면면은 하나같이 애련이라 마음은 당신 쪽으로 달막거리지. 결국 깊은 응시는 애호의 시작이다. 

김선옥 작가의 전시에 다녀왔다. 오래전부터 그녀의 그림들을 보아 왔다. 유독 밝은 색감과 주제가 명확한 작품들로 그림 앞에 서면 미소가 마중 나온다. 그런데 그 미소 마냥 밝고 환한 것만은 아니다. 생의 한가운데를 뚫고 나온 사랑과 애틋함이 교차 된 미소라는 씨줄, 생의 깊은데에 남겨진 그리움과 아득함은 날줄이겠다. 그림 앞에서 불현듯 감정선이 깊어간다. 

ㅡ 어떻게 이렇게 늘 예쁜 그림만 그리세요? 

김선옥 작가는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고 했다. 정작 본인은 예쁜 그림이라고 생각지 않고 있고, 나도 그리 생각한다. 그림은 그녀의 삶에 대한 태도다. 예쁜 그림이 아니라 밝음을 지향하는 태도, 온기를 확산하고픈 태도인 것. 그 마음이 노랑, 분홍, 초록, 선연하게 드러난 것이다. 마음을 도무지 못 숨기는 분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에게 보여주신 환대도 역대급이었다. 느린 예술 에세이 '느리게 걷는 미술관'을 너무 잘 읽었다 하시며 몇번이고 칭찬을 아낌없이 부어주셨던 것. 아,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줄 아는 작가시구나. 순한 웃음 뒤의 강단이 보였다. 

김선옥 작가의 그림 속엔 이야기가 가득 하다. 샛파란 하늘과 바다, 초록 나무 아래 가족이 보인다. 어느 시절의 휴가였을까? 작가의 추억 하나가 나의 가슴과 닿는다. 찌르르하다. 오래 전 휴양지의 바다가 떠오르며 맨발의 아이가 달려간다. 모래에 찍히는 작은 발자국. 아이는 바다를 향해 달려가고 나는 아이를 향해 달려갔지. 그리고 지금도 그런 것 아닐까. 문득 이제는 너의 바다로 함께 걸어주고 싶구나 마음에 다정한 결기가 생긴다. 그림 속 달팽이가 이런 나를 응원해준다. 김선옥 작가는 예쁜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아니다. 우직하게 스스로를 독려하고 한결같이 우리를 격려해주고 있는 것이다. 

'파라다이스' 앞에 오래 있었다. 어린 딸 아이와 어린 엄마였던 나를 만나느라. 그 때는 그 시간이 파라다이스라는 걸 알지 못했다. 드넓은 바다 앞에서 아이의 한글 떼기를 걱정했고 황홀한 석양을 보며 삶의 막연함을 불안해했던 것 같아. 뭉크도 아닌데 왜 그 순간이 주는 아름다움을 누리지 못하고 쓸데없는 걱정을 만들어서 했을까. 그랬던 내가 지금의 심하게 유연한 사람이 되기까지 시간은 세월이 됐고 어느새 나이는 오십줄. 김선옥 작가도 수많은 생의 파고를 넘어왔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그녀는 그림으로 생의 따뜻한 긍정을 건네준다. 단단해진 미소를 전해준다. 이것이 바로 그림의 힘.

 

글 / 임지영 

 

 

 

파라다이스를 꿈꾸나요

긍정의 언어가 좋다. 워낙 유복하고 걱정없이 살았잖아, 그러니 세상 맑고 밝게만 보는거지 라는 말을 들으면 웃는다. 예전에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얼마나 힘들었는데! 하며 좌절과 절

news.v.daum.net

 

 

 

'전시회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주에서 만난 파리지앵  (0) 2022.07.22
누구에겐 그럴 수 있는  (0) 2022.07.17
우리옛돌박물관 탐사  (0) 2022.06.02
성북구립미술관 윤중식 추모전  (0) 2022.06.02
성북동에서 만난 오감만족  (0) 2022.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