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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칼럼

성북동에서 만난 오감만족

- 우리옛돌박물관, 길상사, 성북구립미술관, 심우장 답사 후기

 

나는 5월이면 병이 도진다. 겨울 동안 웅크리고 있던 몸이 봄볕에 말랑해지면서 나타나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답사 병’이다. 덕분에 몇 년 동안 아이들과 함께 전국을 두루 다녔다. 하지만 코로나로 이동과 공간에 제약이 생기자 증상이 사그라들고 말았다. 단순히 증상뿐 아니라 장소와 함께 떠올려지던 추억도, 의욕도 희미해졌다. 그간 읽고 쓰기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던 답사에 대한 갈증은 꽤 컸던 모양이다. 어딘가를 가고 싶어 스크랩한 사진과 메모만 수십 장이다. 마음은 굴뚝 같은데 정작 몸이 움직여지질 않았다. 다시 움직이기 위해 몸과 마음에 동력이 필요했다. 참석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발자국 답사에 어떻게든 따라나서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다.


아침 10시, 한성대 입구에서 집결해 최병일 선생님의 안내로 첫 번째 장소인 ‘우리옛돌박물관’으로 향한다. 오랜만에 타보는 마을버스에 굽이굽이 오르는 시간을 거스른 듯한 성북동 언덕길이 정겹다. 옛돌박물관은 들어서는 입구부터 3층에 이르는 건물 내부, 북악산을 낀 외부 정원까지 돌 이야기로 가득하다.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인 옛 돌들이 각자의 사연을 품고 수집가의 정성으로 조경과 어우러진 모습은 그야말로 한 폭의 동양화를 방불케 한다. 은은한 풍경소리와 초록의 나무들 사이에서 누린 잠깐의 휴식은 5월에만 가능한 오감 만족이다.

천천히 걸어 내려와 ‘길상사’에 이른다. 길상사는 한 달간 함께 읽은 『백석평전』의 주인공인 백석의 연인, 자야여사가 법정 스님에게 시주해 세워진 절이다. 그녀에게 백석이 어떤 의미였을지 시대를 풍미했던 요정에서 종교적인 장소로 탈바꿈한 길상사를 거닐며 느껴본다. 이제 허기진 배를 채울 시간, 길을 잃을세라 ‘심우장’ 표지판을 따라 굽이굽이 언덕길을 열심히 오른다. 이내 다시 내리막길에 닿으니 사골국물이 일품인 ‘성북동 손칼국수’ 앞이다. 오르고 내리며 부지런히 움직여준 발이 쉬는 동안 속을 채워주는 따끈한 국물이 반갑다.

 

 

 

식사 후, 바로 옆에 자리 잡은 ‘성북구립미술관’으로 이동한다. 한국 근현대미술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윤중식 작가의 타계 10주기 추모 기획전인 ‘회향(懷鄕)’이 열리고 있다. ‘석양의 화가’라는 명칭답게 노랗고 주황의 색감이 매력적인 ‘석양’이 입구에서 손님을 맞는다. 이중섭, 박수근과 같은 잘 알려진 작가들과 함께 활동했음에도 대중적으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죽기 전날까지도 그림을 그렸다는 작가의 열정이 작품에 고스란히 스며 예술성을 발휘한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재현된 작가의 방은 그림을 사랑했던 그의 마음을 담고 있는듯하다.

 

심우장으로 가는 길, 제법 뜨거워진 햇살과 식곤증에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이럴 땐 늘 만장일치다. 뜨겁고 시원한 음료에 백석의 이야기가 오가며 오늘의 여정과 즐거움이 녹아든다. 한숨 돌려 여유롭게 찾은 심우장은 만해 한용운 선생이 돌아가시기 전까지(1933년~1944년) 기거하던 곳이다. ‘심우(尋牛)’란 ‘소를 찾음’에서 갖는 깨달음의 경지를 뜻하는 경계라고 한다. 집은 남쪽의 조선총독부를 피해 북향으로 지어진 독특한 구조로 지어졌다.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44년에 생애를 마친 만해의 설움을 이 유택은 알기나 할까?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더니 아버지를 따라다니던 발걸음이 부모가 되어서도 이어졌다. 그러던 중 무섭게 확산하는 코로나로 인해 나의 ‘답사 병’은 큰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오늘, 성북동 인문학 기행의 기름칠 덕분에 뻑뻑했던 몸과 마음에 동력을 얻은 나를 본다. 잠시 고개 숙였던 답사에 시동이 걸린다. 모든 게 최병일 선생님과 발자국 덕분이다. 나는 이것이 ‘연대’가 아닐까 생각한다. 함께 걸으면서도 각기 다른 걸음의 속도를 기다려주고 독려해주는 진정성이 있어 가능한 연대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는 지금, 3년 차 발자국의 앞날은 더없이 밝다. 읽고 쓰기에도 모자라 함께 다닐 곳이 지천이니 말이다. 이제 불쑥불쑥 떠날 일만 남았다. 

 

글 / 권새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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