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시회 칼럼

한국미술재단 <꿈, 피우다> 전시회 후기

예감이 좋다 > 

(한국미술재단 ArtVerse KAF, 구채연 / 김형길 2인전)

 

향유(享有)의 사전적 의미는 ‘누리어 가짐’이다. 즐기지 않고서는 힘든 일이다. 예술교육 리더(이하,예교리) 수업을 들으며 내가 가장 먼저 배워야 할 마음가짐이었다. 머리가 아닌 직관으로 감상하는 법이 우선되어야 했다. 수업이 회차를 거듭하며 긴장이 풀리자 조금씩 마음이 유연해짐을 느낀다. 그림을 보고 쓰고 외운 적은 있어도 보고 쓰고 눈물 흘린 적은 없었던 내게 매 차시의 수업은 감동이다. 그 감동에 감사가 더해져 한 차시 수업이 하나의 미술관이 된다. 이렇게 기묘한 미술관이라니!

 

오늘, 임지영 선생님이 매달 진행하는 예감클럽 작가 방문의 날이다. ‘떠나는 것에도 노력이 필요하다’라는 선생님의 말처럼 일단 가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고속버스에 올랐을 뿐인데 공항 가는 기분처럼 한껏 들뜬다. 그러고 보니 ‘집을 나서서 미술관까지 닿는 여정 또한 예술 향유의 일부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오래간만에 빌딩 숲으로 둘러싸인 서울 한복판을 걸어 한국미술재단에 이른다. 두근두근, 드디어 실물 영접이다!

 

지금 한국미술재단의 아트버스 카프(ArtVerse KAF)에서는 구채연, 김형길 작가의 2인전이 열리고 있다.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많은 이야깃거리가 담긴 구채연 작가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한 편의 동화를 읽는 느낌이다. 재미는 거기서 끝이 아니다. 작가 노트를 꼼꼼히 쓴다는 작가의 느낌 있는 제목 덕에 작품과 실감 나는 대화가 가능하다. 어디서든 만나면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작품 하나하나에 작가의 개성이 듬뿍 담겼다. 오늘의 그림을 골라 자리에 앉는다. 이제 직관이 글이 되는 시간이다.

 

열다섯 분이 거의 겹치지 않게 그림을 골랐다. 그만큼 기호와 시선이 다양하다. 같은 그림이라도 전혀 다른 글이 나온다. 달랑 15분이었을 뿐인데 금쪽같은 글귀가 쏟아져 나온다. 말이 필요 없다. 그냥 감동이다. 거기에 더해진 선물이라면 글 하나하나에 덧붙여진 구채연 작가의 피드백이다. 감상자는 작품으로, 작가는 글로 감사와 위로를 주고받는 시간이 된 셈이다. 두 시간으로 예정되었던 시간이 훌쩍 넘도록 전시관은 열기로 가득하다. 예술을 향유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온도다.

 

5월, 예감이 좋다. 드디어 나도 예술 향유자가 되어간다. 미술관을 검색하고 지인들과 함께 미술관을 찾고, 다니는 길목 길목의 예술품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참으로 귀한 누림이다. 오늘 방문에서 내가 얻은 또 하나의 수확이 있다면 작가들을 후원하는 공익재단을 알게 된 사실이다. 작가들을 후원하며 ‘학교 안 작은 미술관 기증사업’을 이어오고 있는 ‘한국미술재단’이 바로 그 단체다. 어려운 시기에 ‘그림 한 점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라는 고귀한 신념으로 소중한 나눔을 이끌고 계신 한국미술재단의 황의록 이사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다.

 

집으로 오는 길, 버스 시간에 늦지 않으려 뛰어오느라 거친 숨을 고르며 차에 오른다. 긴장이 풀려 잠이 올 만도 한데 자꾸 오늘 보았던 그림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핸드폰에 담긴 그림들을 꺼내 하나하나 천천히 바라본다. 바로 조금 전인데도 새록새록하다. 예술의 힘이다. 더불어 중년에야 비로소 깨달은 예술 향유의 가치를 나눌 수 있는 벗들이 있어 기쁘고 든든하다. 귀하고 소중한 인연이 오래간 이어지면 좋겠다. 함께 즐기면 좋겠다. 역시, 시작부터 예감이 좋다.


글 / 권새봄 (예교리 4기)

 

 

 

'전시회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구에겐 그럴 수 있는  (0) 2022.07.17
<오늘도, 행복> 김선옥 개인전  (0) 2022.06.13
우리옛돌박물관 탐사  (0) 2022.06.02
성북구립미술관 윤중식 추모전  (0) 2022.06.02
성북동에서 만난 오감만족  (0) 2022.06.02